1960년까지 활동했다.
그 후 1960년대는 한국 산업디자인 발전의 특기할 사항들이 점철된 시기로, 교육계는 응용미술시대에서 디자인의 본령(本領)을 찾는 전문교육시대로 전환, 각 대학이 산업디자인 교육을 실현한 때이며 산업계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수출정책으로 활발한 생산활동을 시작했다.
환경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다는 점에서 초기의 환경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1920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다다(Dada)’전은 전시회 전체를 일종의 설치 공간으로 구성했다.)
1920년대 환경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예술 형식이 실험되었다. 러시아 전위 미술가들은 주위 환경을 고려한
환경미술은 장식적 요소로서의 기존 건물이나 공간을 꾸미는 부수적 의미보다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려는 의미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현대적 의미의 환경조형물은 조각 작품뿐 아니라 회화, 슈퍼그래픽, 가로편의시설 등 현대 도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다양한 존재 형
환경미술이었는데, 이것이 쓰임새 있는 예술로 전환됨으로써 환경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만들어 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20세기 초부터 근대미술의 흐름에서 보이는 몇 가지 특성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예컨대 현대 미술가들은 회화나 조각이 그 자체로서 2차원 혹은 3차원 물체로서의 자율성을 갖기
04 우리나라의 공공미술
- ‘국가주도형 공공미술’로 시작
- 1960~70년 : 새마을운동, 충무로 이순신상, 덕수궁 세종대왕상
- 1980년 : 반공탑, 환경미술 서울시 조례제정, 환경조각, 1% 환경조형물 설치법 제정
- 2000년 : 수입품으로서 ‘공공미술’개념이 도입
- 1%법이란? 건축물을 세울 때, 건축물의 면
조각에는 불교의 관념적인 조형물이 많다. 그것은, 예배의 대상으로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제작된 것이다. 또한, 그것을 조형하기에 앞서 그 형태를 만들도록 하기 위하여 쓸모 있었던 그 무엇인가가 있어서 그 관계는 단절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미술사는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감상하고자 하
미술은 그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19세기에는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대하여 빈부의 갈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국립미술관의 설치가 활발히 추진되었으며,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Identity)을 형성하기 위하여 기념동상, 기념조형물이 대거 조성되었다
미술의 전통은 그 이후 고대 중국미술의 지주가 되었다. 진(秦)·한(漢) 시대에는 옛 무덤의 벽화와 만리장성이 축조되어 그때의 생활상과 뛰어난 기술을 알 수 있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에는 인도로부터 불교 미술이 전래되어 돈황에 석굴 사원이 축조되었고 불교 조각이 성행하였다. 중국 미술에 있어
미술이나 장소 자체를 위한 디자인 등을 포함한다. 장소에 결합하는 예술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것이 설치되는 장소는 대부분 도시이며, 조각·벽화·스트리트퍼니처·포장작업(paving)·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근래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념 조형물의 형태를 뒤집어놓거나 날카로